덤프트럭 아래서 평화의 섬을 그리다
얼마 전 강정마을로부터 주민들과 활동가 8명이 농성 중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마을의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막상 이 ‘연행’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면 많이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연행된 8명 중 구속이 결정된 한 명은 앞서 구속된 다른 1명의 주민과 함께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주민들은 매일 트럭 아래 몸을 밀어 넣거나 포크레인 위로 올라가 공사를 방해하는 위험한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마 일상적인 삶을 살아온 분들에게 농성이나 연행, 그리고 단식 같은 단어들은 부담스럽고 불편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투쟁’이나 ‘싸움’을 즐기는 특정한 무리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불편한 이야기들이 제주도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이들이 그저 평생 농사를 짓거나 작은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조금 의아해하지 않을까 합니다.
강정마을은 제주도 남단 서귀포시에 위치한 해변 마을입니다. 마을 동쪽에는 "강정천"이 위치하고 있어 한라산의 천연 암반수가 사시사철 흘러내리고, 제주도에서는 보기 힘든 “은어”가 서식하고 있는 곳입니다. 마을 앞 중덕바다에는 구럼비라는 독특한 형태의 용암지대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지요. 최근에는 사람들에게 제주 올레길 7코스로 더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제주에선 드믈게 쌀농사가 가능한 지역으로 ‘제주 최고’라는 뜻의 일강정(一江汀)으로 불릴 만큼 자부심이 강한 지역이지요.
하지만 지금 강정마을은 4년이 넘는 시간동안 반대투쟁을 계속하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갈등의 현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2007년 느닷없이 해안과 마을 일부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안보와 민주주의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된 것은 해군의 주장대로라면 바로 안보상의 이유 때문입니다. 남방해역과 해상교통로에 대한 효율적인 감시와 보호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접근이 용이한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해군은 그동안 대잠수함 작전이나 연안에서의 북한 도발 결퇴 같은 ‘연안해군 정책’을 고수해왔는데, 이와 반대로 제주 해군기지는 ‘대양해군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입니다. 대양해군정책은 날로 커져만 가는 중국의 영향력과 막강한 일본의 해군력을 견재하기 위해 원양에서 작전이 가능한 함대를 구성하겠다는 정책으로 자칫 동북아에서 연쇄적인 군비증강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설령 해군의 주장대로 이러한 군사 안보적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선정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법과 절차를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정마을이 이처럼 오래도록 갈등을 겪게 된 이유에는 바로 제주도와 해군 당국이 법과 절차,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불법적인 행동들이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제주 해군기지는 지난 1993년부터 해군본부에서 제주에 해군기지의 신규소요를 제기해 오다가 지난 2002년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군 진지가 있던 화순에 해군기지 건설계획을 발표하게 됩니다. 당연히 화순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건설계획이 중단되었고, 이후 2005년 새롭게 건설계획이 발표된 위미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반복됩니다.
연이은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었는지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은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해군기지 건설을 유도합니다. 그저 합법적인 건설발표로는 더 이상 제주 땅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강정마을은 인구가 1,900명 정도 되는 작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2007년 4월 불과 80여 명이 모인 마을임시총회에서 만장일치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결의가 이루어지고, 뒤이어 도지사는 여론조사를 통해 2007년 5월 해군기지 강정동 유치결정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마을주민들은 제대로 된 의견 수렴조차 없이 순식간에 해군기지 유치 결정이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반발하게 되고 결국 2007년 8월 마을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결의를 주도한 마을이장을 해임시켜버립니다. 강정마을의 비극은 바로 이런 비민주적이고 비밀스러운 공작에 의해 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이어지게 됩니다.
8월 10일 당시 투표에는 마을주민 436명이 참가해 유효 투표수의 95.4%인 416명이 마을이장 해임에 찬성을 했고, 그 열흘 후인 2007년 8월 20일에는 공개적으로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 마을주민 725명의 유효 투표 중 94%인 680명이 유치에 반대했습니다. 이처럼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소수만이 모여 결의를 하고 도시자의 여론조사에서 주민 다수의 찬성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주민들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해군은 강정주민들이 유치를 원했으므로 그렇게 결정했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해군기지건설을 강행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은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갈라서게 되었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지난 4월 29일, 국방부는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그 개정안에 따르면 해군의 ‘대양해군 정책’이 사실상 폐기된다는 사실입니다. 작년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우리 군의 전력 증강 방향이 북한의 국지도발 등 현존 위협에 대응하는 쪽으로 대폭 선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국가안보의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되었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안보를 빙자하여 군 내부에서 '자체 세력 확장'과 '이익 도모'를 기하려는 '해군의 몸 불리기 사업'에 불과하다고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무너지는 제도와 자연생태계
하지만 거짓된 주민들의 찬성 결의만으로 아름다운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강정마을 인근이 문화재보전구역, 생태계보전지역, 생물권보전구역, 제주도립해양공원, 절대보전연안지역 등 무려 5개의 강력한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법령이 보호하라고 지정한 곳이 제주의 강정마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곳 강정마을이 그만큼 생태계가 아름답고 소중한 자연유산이라는 말이겠지요.
이 중 제주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제도가 제주도특별법상에 언급된 "절대보전지역" 제도입니다.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의 고유한 특성을 절대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건축물의 건축, 시설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공유수면의 매립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한라산은 물론 성산 일출봉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2010년 기준으로 대략 제주의 면적 10%가 이 같은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절대보전지역 제도는 제주의 자연환경 보전체계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더욱이 강정 해안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지사는 국책사업인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강정해안변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하였습니다.
더욱 아쉬운 사실은 기본권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해야 할 법원이 강정 주민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주민들은 소송할 자격이 없다며 '절대보전지역 해제' 처분의 위법성은 판단하지 않은 채 각하 판결을 함으로써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면죄부를 줬다는 사실입니다. 주민들에게도 소송자격이 없다면 과연 누가 도지사의 무법적인 행동에 반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논리대로라면 제주의 한라산이나 성산일출봉 등도 국책사업이 결정되면 더 이상 지켜낼 방법이 없어지는 샘입니다.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과 평화의 섬
제주는 국가권력의 횡포로 인해 수많은 도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4ㆍ3의 비극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비극을 승화시켜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2005년 1월 27일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지요. 따라서 이 '평화의 섬' 은 4ㆍ3의 아픔과 한(恨)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열망이 담긴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일방적으로 강행함으로써 제주도는 '갈등의 섬'으로 전락했고 강정마을 공동체의 평화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지난 2009년 서귀포신문이 강정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적대감, 우울, 불안, 강박 등 정신적인 이상 소견이 있는 사람이 전체 주민 중 75.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 때문이겠지요. 정신이상 소견 중에는 '적대감'이 가장 많았는데 전체 주민 중 57%가 적대감에 사로잡혀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전체 주민의 43.9%나 되어 제주도민의 자살충동 평균치보다 5.4배나 높았습니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계획했다고 응답한 주민들도 34.7%나 되었습니다.

대게 국책사업을 통해 땅을 잃어버리는 곳에서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일기 마련입니다. 공사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구도 이러한 과정에서 갈등의 매개체가 된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정작 고향땅의 자연환경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가난한 이들은 쉽게 강제이주를 찬성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무엇보다 수세대 동안 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조들이 대대손손 살아오던 곳이 군가기지가 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겠지요.
강정마을회도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해군은 회유와 매수로 마을회의 의사결정을 조작하여 입지를 결정했고 주민들을 협박하고 이간질시키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은 주민들을 구속ㆍ구금하고 벌금 폭탄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마을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라고 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들어오는 '해군기지'가 어떻게 평화의 섬과 양립할 수가 있을까요.
지금 제주에서 농성을 하는 이들은 한결 같이 공사중단을 외치고 있습니다. 아무대화와 소통없이 과거의 잘못된 매듭은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결국 언젠가 주민들은 고향을 잃어버릴지 모르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 마음의 고향마저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무작정 강정마을 앞바다에 시멘트를 들이붓기 전에 마을 주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도 활동가도 모두 무너지는 강정의 앞바다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덤프트럭 아래로 몸을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쓰러져있는 그들의 모습이 지금 강정마을과 제주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의 관심이 제주를 향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 [20110525] 캠퍼스 RE뉴스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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